병마를 이긴 최효진, 측면의 지배자로 돌아온다 [네이버 칼럼]
by 운영자 | Date 2016-02-03 14:35:33 hit 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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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칼럼 [서호정의 킥오프] "K리그 클래식 전지훈련을 가다. 전남드래곤즈 in 태국 방콕"

 

 

 최효진의 프로축구 인생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확연히 대비된다.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데뷔, 돌풍의 견인차가 되며 준우승을 경험했다. 2007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해서는 성공의 아이콘이 됐다. 포항에서 3년을 뛰면서 K리그에서 들 수 있는 트로피(리그, FA컵, 리그컵,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거머쥐었다. 2010년 FC서울로 이적해서도 팀의 리그 우승을 도왔다. 가는 곳마다 우승을 선사하는 선수였다. 그 시기의 최효진은 현재까지도 A대표팀 감독을 고민하게 만드는 오른쪽 측면 수비 자리를 놓고 차두리, 오범석 등과 당당히 경쟁했던 이름이다.

 

 

 그랬던 그가 군 입대를 기점으로 한 후반기엔 부침을 거듭했다. 상주상무에서 제대한 뒤 2년 동안 뛴 K리그 경기 수는 37경기에 불과했다. 강력한 스태미너로 한 시즌에만 30경기 이상을 훌쩍 소화하던 최효진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결국 지난해 그는 서울을 떠나 전남으로 이적, 축구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찾아야 했다. 전남이라는 선택은 꽤 괜찮은 재도약대가 됐다. K리그 27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으며 부활에 성공했다. 선배 현영민과 함께 좌우 측면 수비를 이끌며 팀에 큰 경쟁력을 불어넣었다.


 최효진은 2016년 전남의 주장까지 맡았다. 그의 축구 인생 첫 주장이다. 어느 때보다 특별한 책임감과 동기부여로 무장한 이유다. 전남의 전지훈련이 진행 중인 방콕에서 만나 신임 주장으로서의 각오, 성공에 목 마른 전남을 이끌 계획을 들었다. 그 전에 해야 할 이야기도 있었다. 이제 말할 수 있는, 처음으로 공개하는 최효진의 안타까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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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효진이 숨겨야 했던 10개월의 시간

 

 2013년과 2014년의 부진은 최효진에게 아픔이었다. 선수로서 승승장구하며 대표팀 주전 자리도 꿈이 아니었지만 2012년 날개가 크게 꺾였다. 그를 덮친 것은 병마였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었다. 상무 제대를 1개월 앞둔 2012년 말에 병원서 받은 진단이었다. 제대 후 더 큰 전성기를 열 것이라는 열망으로 가득 찼던 최효진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은 내분비 기관인 갑상선의 대사가 필요 이상으로 진행되는 상태다. 과다 분비로 신체가 이상 과열된다. 당연히 합병증이 따른다. 맥박이 빨라지고 체중이 줄기 시작한다. 체력이 떨어져 쉽게 피로가 온다. 컨디션 관리와 피로 회복이 중요한 운동 선수에겐 치명적인 병이다. 이 시기 최효진은 한 경기를 뛰면 충분한 휴식을 가져야 했다. 경기 수가 확연히 줄어든 이유다. 선수로서의 가치가 떨어질까 구단 외부에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해야 했다. 자기 관리를 못하는 선수가 됐다는 오해도 받았다. 그 여파에서 벗어나는데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사실 몸이 아팠어요.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문제였죠. 건강하게 운동하고 싶은데 의욕만 갖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처음 문제를 발견한 건 2007년 포항에 입단할 때였어요. 몸 안에 항체가 있어 문제를 일으킨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2년 간 약을 먹으며 관리를 해야 한다고, 당분간 격한 운동이나 훈련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신기하게 한달 만에 좋아졌어요. 그 해 포항의 우승에 큰 역할을 했고 그 뒤로도 계속 잘 풀리면서 그냥 사라지는 문제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상무 제대를 한달 앞두고 다시 발병했죠. 서울로 돌아가서 다 잘 될 거라고, 축구 인생의 가장 큰 꽃을 피워보려고 준비했는데 그때부터 개점 휴업에 들어갔어요.”

 

 약을 먹으며 몸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가장 큰 적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에 따라 몸 상태가 요동친다. 작은 체구, 공격수에서 수비수로의 포지션 전환 등 선수로서의 많은 난제를 특유의 적극적인 성격과 강한 목표 의식으로 돌파했던 최효진은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특히 외부에 알릴 수 없는 자신의 몸 상태를 모르고 경기를 뛰고, 안 뛰고에 따라 가치를 재단하는 일부 팬들의 질타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다. 제대 후 본격적으로 치른 2013시즌에 최효진은 교체로 나서는 일이 빈번했다. 선발로 나서도 90분을 다 채우기 어려웠다. 풀타임을 소화한 경기가 4경기에 불과했다. 기동력의 상징이 되어야 하는 풀백이 교체되고, 교체로 출전하는 걸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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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상황을 모르고 질책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가장 힘들었죠. 원체 긍정적인 성격이라서 그 순간에서 계속 ‘이겨낼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고 주문을 외듯 버텼어요. 그때 아내와 딸이 옆에 있지 않았다면 재기 불능으로 갔을 수도 있어요. 가족을 보며 제 자신을 다스렸죠. 원래 빨리 회복이 되는 건 아닌데 의지가 강했던 건지 예상보다 일찍 몸이 좋아졌어요. 대신 경기는 했지만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었고요.”

 

 2013년을 기점으로 몸은 나았다. 항체는 계속 안고 가야 하지만 현재는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문제는 마음의 병이었다. 최효진 본인의 줄어든 자신감,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 속에 예전의 경기력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서울은 차두리를 영입하며 그를 완벽히 대체했다. 2014년 최효진은 프로 데뷔 후 가장 저조한 기록을 남겼다. 13경기 1도움. 그것이 모두의 기대 속에 큰 꿈을 안고 이적했던 서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그 때 손을 내민 것은 전남의 노상래 감독이었다. 이미 전남에 가서 자리를 잡고 있던 선배 현영민도 적극적으로 이적을 추천했다. 광양은 최효진에게 힐링의 장소였다. 주변의 믿음 속에 부활의 전주곡을 켰다. 시즌 중 부상도 있었지만 발병 후 가장 안정적으로 시즌을 치렀다. 유일한 아쉬움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아내와 두 딸 소유와 지유를 남겨 두고 홀로 광양에 내려왔다. 축구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였지만 부상 시기에 아픈 몸을 안고 불 꺼진 집에 들어설 때는 허탈함이 몰려 왔다. 스트레스 관리에 적신호가 켜졌다.

 시즌이 끝나고 아내와 상의를 했다. 최효진의 가족은 광양으로 완전히 이사를 한다.


“처음 전남에 왔을 때는 축구 하는 게 그냥 즐겁고, 경기에 다시 나가는 게 즐거웠죠. 그런데 작년 여름에 한번 다치니까 아픈데 불 꺼진 집에 혼자 있으니까 외롭더라고요.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다행히 아내도 제 생각에 따라줬고요. 와이프와 애들은 살면서 점점 좋아지는 거 같아요. 가장 의지할 사람이에요. 휴가를 갈 때마다 딸들이 변해 있어요. 외모도 달라지고, 말도 많아지고. 그걸 놓치고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요. 이 시기는 다시 오지 않는데. 너무 보고 싶어서 내려와서 함께 하자고 했어요. 그리고 전남이라는 팀에서 완전히 정착하고 싶다는 의지기도 해요. 가족들이 가까이 오면 축구를 더 잘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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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의 DNA를 바꾸고픈 우승 청부사


 올 시즌 최효진은 주장이라는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맞았다. 팀이라는 큰 틀에서 축구를 하고, 봐야 한다. 팀 내 최고참인 현영민이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서울에서 함께 생활하며 최효진의 성격을 잘 아는 현영민은 주장을 맡음으로써 후배가 또 한번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처음 최효진을 고려하지 않았던 노상래 감독도 현영민과 코치들의 적극적인 추천에 최종 결정을 했다.


 “축구를 하면서 주장을 맡은 건 처음이에요. 영민이 형이 추천을 했고, 코치님들도 괜찮겠다고 의견을 모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감독님은 저랑 다른 후보를 두고 저울질하시다가 주변의 뜻이 모이자 결심을 하신 것 같아요. 코치님들이 처음에 의중을 묻길래 해본 적이 없어서 고민된다고 했는데 어느 날 감독님이 제 방에 들어오시더니 ‘할래? 니가 해. 잘할 수 있지? 잘 해라’ 하고는 나가셨어요. 노상래 감독님다운 주장 임명이었죠.(웃음) 저 혼자 다 짊어지고 가는 건 아니에요. 전남은 고참들이 많은 팀이라 의지가 돼요. 영민이 형을 비롯해 (이)지남이, (방)대종이, (김)평래, 그리고 부주장을 맡은 (정)석민이까지. 다 도움을 주고 있어요.”


 최효진의 표현에 따르면 지난해 전남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다 여름 이후 확 냉탕이었다. 7월까지 3위를 달리며 목표로 했던 상위 스플릿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그 뒤 12경기에서 5무 7패의 깊은 침체에 빠지며 결국 또 다시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졌다. 막판 3경기에서 2승 1무를 기록하며 시즌이 끝나기 전 뜨거운 물을 잠시 넣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팀의 하락세는 FA컵에도 영향을 미쳐 4강에서 인천에게 패하며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놓쳤다. 2016년 올해는 되풀이하면 안 되는 모습이다.


 “개인도 팀도 작년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해요. 자신은 있어요. 땀방울을 더 많이 흘리고 있으니까. 모두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태국으로 와서 본격적인 연습경기를 시작하니까 이제 문제점을 찾아 그걸 개선하면 팀이 더 좋아질 거에요. 든든한 기둥이었던 (김)병지 형을 비롯해 (이)종호, (임)종은이가 떠나며 주축 선수가 빠진 건 사실이지만 누군가가 떠난 자리엔 새 스타가 탄생하기 마련이거든요. 기대되는 선수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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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전남은 27명의,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적은 스쿼드로 운영된다. 노상래 감독은 최대한 경쟁력 있는 선수를 모아 밀도 높은 팀을 만들었지만 절대적인 수가 적은 게 고민이다. 그래서 모든 선수가 주전급이 되어야 한다. 최효진도 거기에 동의하며 자신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처럼 사연이 있어 전남으로 오게 된 루저들을 위너들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전남 스쿼드엔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선수가 없어요. 모두 끌고 가야죠. 다 투입될 거고요. 27명 모두 다 뛰는 좋은 팀이 될 겁니다. 주장으로서 제가 할 일은 나태해지거나 포기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게 만드는 거에요. 안되면 멱살이라고 잡고 훈련장으로 데려갈 거에요. 새로 온 선수들이 여기 와서 전에 있던 팀에서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올해 (배)천석이를 꼭 좀 부활시키고 싶어요.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리게 돕고 싶어요. 밖에서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선수더라고요. 천석이한테도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작년에 팀이 스테보의 백업이 없어 고생했죠. 상대를 괴롭혀 줄 선수가 1명만 더 있어도 6강에 갈 수 있었어요. 그 역할을 천석이나 (조)석재가 해 줘야 해요. 그래서 천석이한테 밖에서 하는 얘기에 기죽지는 말되 여기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 쏟으라고 했어요.”


 최효진은 현역 K리거 중 유례 없는 우승 경험을 갖고 있다. 총 7번의 우승을 했다. 포항에서 주축이 돼 4번, 서울에서도 3번을 경험했다. 리그 우승만 3회고, 챔피언스리그와 FA컵이 각 1회, 리그컵이 2회가 있다. 서울이 그를 영입한 이유도 우승 청부사로서의 면모를 주목해서였다. 실제로 최효진은 서울 입단 첫해 팀에게 리그와 리그컵 우승을 선사했다. 전남에서의 우승은 쉽지 않다. 현실감각이 뛰어난 최효진도 그 부분을 알고 있다. 대신 자신이 가진 경험으로 늘 고비에서 좌절하며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전남의 약한 DNA를 바꾸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목표는 우승이에요. 쉽지 않죠. 아마 어려울 거에요. 하지만 6강을 목표로 하면 6강 근처에서 안주하게 되요. 작년에도 여름까지 잘했고 6위 이상의 순위를 기록하니까 ‘우리는 가게 될거야’라는 마음이 바이러스처럼 팀 내에 퍼졌어요. 그래서 결국 9위로 끝났죠. 더 높은 목표를 잡아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전남에서도 우승을 해 보고 싶어요. FA컵이 좀 더 가능성이 높겠죠. 올해는 느낌이 좋아요. 전남이 잘할 거 같아요. 제가 그렇게 되도록 더 노력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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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측면은 다시 나의 영역이다


 빠른 발, 부드럽게 제동하며 들어가는 드리블, 공격수 출신다운 뛰어난 마무리. 챔피언스리그에서 해트트릭을 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최효진은 공격적인 측면 수비의 대명사로 통했다. K리그에서 3년 연속(2008-2010) 베스트11을 차지하며 오른쪽 측면을 지배할 것 같았던 그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잊고 다시 한번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아닌 팀을 위해서다. 최효진은 올 시즌 개인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매년 확고한 목표를 잡고 왔습니다. 주전이 되겠다, 우승을 하겠다, 국가대표가 되겠다, 월드컵에 나가겠다… 그런데 올해는 내 개인적인 목표를 하나도 잡지 않았어요. 있다면 딱 하나죠. 다치지 않는 것. 그 외의 목표는 모두 팀을 위해서에요. 운동장에서 노상래 감독님께 힘을 드리고 싶습니다. 작년에 너무 많이 다쳐서 감독님이 필요로 할 때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거든요.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주장을 맡겨주신 만큼 항상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옳은 방향으로 끌고 가겠습니다.”


 “오른쪽 측면만큼은 내 차지로 만들겠어요. 한때 받았던 좋은 평가를 되찾고 싶어요. 노력만이 답이죠.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솔직히 고백하면 상무에 있을 때 너무 안일한 생각을 가졌어요. 정신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가장 나태했던 때였어요. 제대하고 빨리 서울로 복귀하고 싶단 생각만 갖고 제 자신을 놨는데 그때 나태함의 함정에 빠졌다. 후회가 남는 시간이에요. 작년에는 노력을 정말 많이 했는데 운이 따르지 않았고요. 다시 한번 신인 시절의 마음가짐으로 부딪히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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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대표팀의 주전으로 성장한 후배 이슬찬은 최효진의 마음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경쟁자다. 노상래 감독은 둘의 공존을 계획하고 있다. 이슬찬을 윙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만큼 두 선수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대안을 준비하는 중이다. 최효진은 이슬찬의 성장을 기특해 하면서도 함께 발전하는 그림을 그렸다.


 “슬찬이가 기특해요. 한달 사이 또 좋은 선수로 성장했더라고요. 경쟁자인 건 맞죠. 프로니까 그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봐요. 그 경쟁을 둘 다 즐겨야죠. 제일 중요한 건 슬찬이와 저 모두 전남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해요. 하나가 살고, 하나는 죽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둘이 함께라면 어느 팀을 상대로도 오른쪽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1983년생. 갓 대학을 나와 프로에 데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던 신인 최효진은 12년이 지난 지금 베테랑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병마로 놓친 시간이 한 없이 아쉬운 그는 선수 생활을 최대한 늘리고 싶어 한다. 전남은 최효진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팀이기도 하다. 모든 게 최효진이 하기에 달렸다.


 “제 선수 생활에 대한 기준을 영민이 형이 줬어요. 79년생이지만 여전히 우리 팀 최고의 체력을 갖고 있어요. 저 역시 체력적인 부분은 자신 있어요. 한계를 미리 긋고 가기 싫어요. 끝나는 때까진 스스로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83년생 동기들도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아직 함께 갈 길이 한참 남았어요. (김)재성이, (염)기훈이, (신)화용이, (조)원희, (김)영광이, 해외에 있는 (조)용형이까지 다들 더 오래 뛰었으면 좋겠어요.”


 

글=서호정(태국 방콕)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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